정희

정희001
정재(呈才)보다 극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는 노래와 춤.

정희002
발상(發祥)의 여섯째 장(章). 한문 가사 4언 1구로 되어 있다.

정-희등001
조선 시대의 문신(1506~1545). 자는 원룡(元龍). 지평(持平), 장령(掌令)을 지냈다. 성품이 강직하고 곧았으며, 을사사화 때에 윤임의 처형을 반대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귀양 가던 도중에 죽었다.

정희^왕후001
조선 세조의 비(妃)(1418~1483). 성은 윤(尹). 예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성종이 즉위한 후에도 7년간이나 섭정하였다.

정희-하비001
중국 북위의 서예가 정도소가 아버지 희(羲)를 기리며 세운 송덕비. 영평 4년(511)에 쓴 것으로, 자연석에 새겼다. 한 자의 크기는 6cm 정도로 마멸된 부분이 적고, 중국 위진 남북조 시대에 북조를 대표하는 글씨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고-정희001
시인(1948~1991). ≪목요회≫와 ≪또 하나의 문화≫ 동인이었고 민족 문학 작가 회의, 여성 문학인 위원회, 시 창작 분과 위원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시인, 생명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초혼제≫(1983), ≪지리산의 봄≫(1987) 등의 시집을 남겼다.

김-정희001
조선 후기의 문신ㆍ서화가(1786~1856).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ㆍ추사(秋史)ㆍ시암(詩庵)ㆍ예당(禮堂)ㆍ노과(老果)ㆍ농장인(農丈人)ㆍ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순조 19년(1819)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 참판에 이르렀다. 학문 연구에 대해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고증학, 금석학에도 밝아 북한산에 있던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였다. 작품에 <묵죽도(墨竹圖)>, <묵란도(墨蘭圖)>, <세한도(歲寒圖)> 따위가 있으며, 저서에 ≪완당집≫, ≪금석과안록≫ 따위가 있다.

김정희^예서^대련^호고연경001
서울특별시 용산구 삼성 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ㆍ서화가 김정희의 글씨. 예서로 쓴 것으로, 김정희의 서체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보물 제1685-2호.

김정희^종가^유물001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김정희가 남긴 유물. 김정희의 종가에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인장ㆍ염주ㆍ벼루ㆍ붓을 비롯하여 편지ㆍ달력ㆍ필사본ㆍ대련 따위가 있다. 철종 8년(1857)에 이한철이 그린 김정희 영정도 함께 지정되어 국립 중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보물 제547호.

김정희-파001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를 따르는 화가의 모임. 조희룡, 허유, 전기 등이 대표적이다. 사의를 중시하는 남종 문인화를 숭상하여 성행시켰으나 진경산수와 풍속화를 쇠퇴시키는 요인이 되었다.